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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를 앞두고 갑자기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파고들었습니다. 저는 그 질문에 답을 찾는 3년 동안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을 다시 읽었고, 단순한 고전 우화가 아닌 정확한 처방전처럼 느껴졌습니다. 자신을 모른 채 달리고 있다면, 이 책이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먹고살기 위해 사는가, 살기 위해 먹는가
많은 분들이 이 책을 "꿈을 향해 나아가라"는 동기부여 문구 정도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 다르게 읽혔습니다. 조나단이 진짜 던지는 질문은 훨씬 날카롭습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무리 속의 갈매기들에게 비행이란 생존을 위한 수단, 즉 물고기를 잡기 위해 날개를 쓰는 것이 전부입니다. 여기서 이 구조를 심리학 용어로 표현하면 매슬로의 욕구 위계 이론(Maslow's Hierarchy of Needs)에 해당합니다. 매슬로의 욕구 위계 이론이란 인간의 욕구를 생리적 욕구부터 자아실현 욕구까지 5단계로 분류한 이론으로, 대부분의 갈매기들은 1단계인 생리적 욕구에 머물러 있는 셈입니다. 조나단만이 5단계, 즉 자아실현(self-actualization)을 향해 비상합니다. 자아실현이란 자신이 가진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자기다운 삶을 완성해 나가는 상태를 말합니다.
제가 30대 중반까지 살아온 방식을 돌이켜보면 솔직히 무리 속 갈매기와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남들이 좋다는 회사, 남들이 인정하는 기준에 맞추어 살아왔고, 정작 제가 진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 번도 진지하게 물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10대에는 막연하게 돈만 벌면 된다고 생각했고, 20대에는 서른이 되면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 믿음이 얼마나 허술한 것이었는지는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추방과 고독, 자기다움을 찾아가는 과정
조나단은 결국 무리에서 쫓겨납니다. 위험한 비행을 시도하고, 기존의 규율을 어겼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저는 이 장면이 책에서 가장 현실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실제로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하는 순간, 주변의 시선이 달라지거든요.
저도 비슷한 경험이 있습니다. 40세를 앞두고 제 자신을 탐구하기 시작하겠다고 했을 때 돌아온 반응들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시간이 남아돌아서 팔자가 좋다",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 없다", "피곤하게 산다"는 말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말들이 조금 상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곧 깨달았습니다. 그 반응 자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무관심하게 살아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라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이 과정을 개별화(individuation)라고 부릅니다. 개별화란 스위스 심리학자 칼 융(Carl Jung)이 제시한 개념으로, 집단의 규범과 타인의 기대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는 심리적 성장 과정을 의미합니다. 조나단이 무리에서 쫓겨난 이후 더 높은 비행 기술을 완성해 나간 것은, 바로 이 개별화 과정의 문학적 표현이라 볼 수 있습니다.
조나단이 겪은 고독이 단순한 고립이 아니었듯, 남들과 다른 길을 걸을 때 찾아오는 외로움도 반드시 실패의 신호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 불편함이야말로 진짜 자신에게 가까워지고 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자기 탐구는 왜 늦게 시작해도 괜찮은가
저는 40세가 다 되어서야 나를 탐구하기 시작했을 때 솔직히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10대 때, 20대 때 이걸 시작했더라면 얼마나 달랐을까"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쉬움도 잠깐이었습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고, 지금 시작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한 일이라는 걸 금방 알게 됐습니다.
실제로 자기 탐구를 늦게 시작하는 것이 결코 손해가 아니라는 근거도 있습니다. 성인 발달 심리학(Adult Developmental Psychology) 분야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자아 정체성(ego identity)은 청소년기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지속적으로 재구성됩니다. 자아 정체성이란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내면의 일관된 감각으로, 경험이 쌓일수록 오히려 더 깊고 선명하게 다져질 수 있습니다(출처: 미국심리학회(APA)).
제가 직접 경험해보니 이게 맞는 말이었습니다. 20대의 저였다면 이 질문들을 피상적으로 지나쳤을 것입니다. 40대 가까운 지금이기에 오히려 하나씩 알아갈 때마다 그 무게가 다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하는 것이 무엇인지, 타인의 기준이 아닌 진짜 내 생각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알게 될 때마다 스스로가 더 귀하게 느껴집니다.
자기 탐구를 시작하는 데 도움이 되는 실천 방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하루 10분, 아무 판단 없이 오늘 내가 즐거웠던 순간을 적어 본다
- "나는 이래야 한다"는 문장 대신 "나는 이게 좋다"는 문장으로 생각을 바꿔 본다
- 남의 기대와 나의 기대를 종이에 나란히 써보고 차이를 확인한다
- 거절할 때 느끼는 불편함이 어디서 오는지 추적해 본다
깨달음을 나눌 때 완성되는 것들
조나단은 더 높은 경지에 도달한 뒤, 자신을 쫓아낸 그 지상으로 다시 돌아가기로 합니다. 이미 충분히 높이 날 수 있는데도 후배 갈매기들을 가르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이 선택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이라고 봅니다. 자기실현의 마지막 단계는 결국 타인과의 연결로 마무리되기 때문입니다.
긍정 심리학(Positive Psychology)에서는 이를 번영(flourishing)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번영이란 단순한 행복을 넘어, 의미 있는 관계와 타인에 대한 기여가 결합될 때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높은 수준의 심리적 웰빙을 뜻합니다. 마틴 셀리그만(Martin Seligman) 박사가 제안한 PERMA 모델에서도 관계(Relationships)와 의미(Meaning)는 번영의 핵심 요소로 꼽힙니다(출처: 긍정심리학센터(PPRC)).
제가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놀란 것 중 하나는, 나를 이해하게 될수록 타인에 대한 이해도 자연스럽게 깊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내가 왜 이 상황에서 화가 났는지, 왜 저 사람의 말이 상처가 됐는지를 알면, 비슷한 감정을 겪고 있는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집니다. 조나단이 무리를 원망하지 않고 그들의 가능성을 믿었던 것처럼, 나를 이해하는 일은 결국 우리를 이해하는 일로 이어집니다.
나를 탐구하는 일이 "팔자 좋은 사람의 취미"처럼 보일 수 있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저는 이것이 삶에서 가장 실용적인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서 에너지를 얻고 어디서 소진되는지를 알면, 일도 관계도 훨씬 명확하게 결정할 수 있거든요.
《갈매기의 꿈》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읽히는 이유는 이 질문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위해 날고 있습니까?" 이 책이 처음에 답을 줄 것이라 기대하지 마십시오. 대신, 지금껏 한 번도 제대로 묻지 않았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계기가 되어줄 것입니다. 저처럼 40대에 시작해도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 이 순간이 가장 빠른 출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