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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법 수업 (로마법, 메멘토 모리, 인간 존엄성)

harira 2026. 8. 1. 19:11

목차


    솔직히 저는 책을 펼치기 전까지 로마법이 노예제를 기반으로 한 일방적이고 잔인한 통제 수단이라는 선입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동일 교수의 《로마법 수업》을 읽으면서 그 생각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수천 년 전 사람들이 이미 인간 존엄성과 공정한 사회를 고민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저를 놀라게 했습니다.

    로마법이 말하는 것: 인간 존엄성과 법의 본질

    로마법의 근간을 들여다보면 'Iustitia(유스티티아)'라는 개념이 자주 등장합니다. 유스티티아란 '각자에게 그의 몫을 돌려준다'는 정의의 원칙으로, 단순히 법 조문을 넘어 타인의 권리를 인정하는 태도 자체를 의미합니다. 이것이 로마법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으면서 특히 간음한 여인의 이야기가 오래 머릿속에 남았습니다. "누구든지 죄 없는 사람이면 그 여인을 돌로 치라"는 구절인데, 제 경험상 법이란 것이 얼마나 쉽게 다수의 논리로 약자를 짓눌러 버리는지 생각했을 때 이 문장은 꽤 충격적이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전제를 법의 영역에서 건드리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로마법을 단순히 냉혹한 통치 수단으로 보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읽으면서 오히려 그 반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로마는 경제적으로는 지중해 무역을 장악했고, 문화적으로는 그리스 철학을 흡수했으며, 종교적으로는 기독교 공인 이후 서구 사회 전체의 틀을 바꿨습니다. 이 거대한 문명을 뒷받침한 것이 바로 법 체계였습니다. 그 법이 순전히 억압만을 목적으로 했다면 수백 년을 유지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법인격(legal personality)'이라는 개념도 로마법에서 처음 정교하게 다듬어졌습니다. 법인격이란 법 앞에서 권리와 의무를 가질 수 있는 자격을 의미하는데, 오늘날 회사나 단체가 개인처럼 계약을 맺고 소송을 할 수 있는 것도 여기서 비롯된 것입니다(출처: 한국법제연구원). 수천 년 전 로마인들이 이미 이 개념을 사용했다는 것, 솔직히 그 스마트함에 적잖이 놀랐습니다.
    이 책을 읽고 정리한 로마법이 현대 법 체계에 남긴 핵심 흔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 무죄 추정의 원칙: 유죄가 입증되기 전까지는 무죄로 간주하는 원칙
    • 법인격 개념: 개인 외에 단체도 법적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원리
    • 계약법의 기초: 합의와 이행 의무를 법적으로 구속하는 원형
    • 피해자 보호 조항: 일방적인 처벌보다 피해 회복을 우선시하는 시각

    범죄는 마땅히 벌을 받고, 피해자는 철저히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법이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권력으로 오염되지 않고, 공정해야 할 곳에는 더욱 법이 바로 서야 한다는 생각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메멘토 모리와 디스케 가우데레: 죽음을 기억하며 오늘을 사는 법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로마 시대 승전 장군이 거리를 행진할 때, 노예가 그 뒤에서 이 말을 반복해서 외쳤다고 합니다. 권력과 영광의 정점에서 '당신도 결국 죽는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행위였습니다.
    저는 이 장면을 읽고 꽤 오랫동안 멈추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죽음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얼마나 자주 잊고 살아가는지, 제 경험상 이건 꽤 솔직한 질문이었습니다.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것을 유념할 때, 비로소 '나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보이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저는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로마 시대에 태어났다면 우리는 노예였을까요, 자유인이었을까요. 이건 단순한 역사적 가정이 아닙니다. 지금도 우리는 타인의 시선과 사회가 정해놓은 기준에 스스로를 묶어두는 방식으로 '자발적 노예'가 되기도 합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것이 시간인데, 그 시간을 어떻게 쓸지는 결국 내가 선택하는 문제입니다.
    '디스케 가우데레(Disce Gaudere)'라는 라틴어 표현도 인상 깊었습니다. 디스케 가우데레란 '기뻐하는 법을 배워라'는 뜻으로, 즐거움이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익혀야 하는 것임을 말합니다. 막연한 낙관주의가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작은 가치를 찾아내는 연습이 필요하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이 개념이 현대 심리학에서 말하는 '인지적 재구성(cognitive restructuring)'과 맞닿아 있다고 느꼈습니다. 인지적 재구성이란 같은 상황을 어떤 관점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감정의 방향이 달라진다는 원리인데, 수천 년 전 라틴어 격언이 이미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면 현재의 막힌 부분을 푸는 열쇠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법은 그 시대의 거울이고, 그 거울을 들여다보면 지금 우리 사회의 민낯도 보입니다. 현대 법학 연구에서도 로마법의 원형이 여전히 비교법학의 기준점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합니다(출처: 서울대학교 법학연구소).
    '법의 지배(rule of law)'라는 개념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법의 지배란 어떤 개인이나 권력도 법 위에 있을 수 없다는 원칙으로, 오늘날 민주주의 사회의 핵심 기둥입니다. 이 개념의 씨앗 역시 로마법 안에서 자라났습니다.


    정리하면, 이 책은 라틴어라는 오래된 언어를 통해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메멘토 모리를 떠올리며 오늘 하루를 돌아보고, 디스케 가우데레를 실천하며 지금 이 순간의 작은 가치를 찾아내는 것, 그것이 제가 이 책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었습니다. 인문학이 낯설거나 로마법이 어렵게 느껴지는 분이라도, 한 번쯤 이 책을 펼쳐볼 것을 권합니다. 세상이 정해놓은 속도에서 잠시 벗어나, 자기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