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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잘하는 사람이 관계도 잘 유지할까요? 직접 겪어보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습니다. 저는 40년을 살아오면서 남편과의 크고 작은 갈등을 돌아볼 때마다 공통점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사건이 문제가 아니라, 그 순간 오간 말투가 문제였다는 것입니다. 이기주 작가의 에세이 《언어의 온도》를 읽으면서 그 이유를 비로소 언어로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말에도 온도가 있다는 것, 팩트로 확인하다
언어에 온도가 있다는 표현은 단순한 비유가 아닙니다.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Nonverbal Communication) 연구에 따르면 대화에서 감정을 전달하는 요소 중 말의 내용 자체는 전체의 7%에 불과합니다. 여기서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이란 목소리의 톤, 표정, 몸짓처럼 언어 외의 방식으로 감정과 의미를 전달하는 모든 행위를 뜻합니다. 말의 내용보다 어떻게 말하느냐가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 저도 직접 겪어보니 이 수치가 과장이 아니라는 걸 느꼈습니다.
이기주 작가는 언어에도 각자의 부피와 무게, 그리고 온도가 있다고 말합니다. 너무 뜨거운 말은 상대를 데이게 하고, 너무 차가운 말은 마음을 얼어붙게 합니다. 적정 온도를 유지한 언어야말로 상대의 마음 문을 여는 도구가 됩니다. 감정 조절 능력을 뜻하는 정서 지능(EQ, Emotional Quotient)이 높은 사람일수록 언어의 온도를 조절하는 데 능숙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EQ란 자신과 타인의 감정을 인식하고 적절히 반응하는 능력으로, 관계의 질을 좌우하는 핵심 역량입니다. 언어의 온도를 다루는 것은 결국 이 EQ를 일상에서 실천하는 일에 다름 아닙니다.
실제로 국내 부부 갈등 연구에서도 갈등의 주된 원인으로 의사소통 방식, 즉 말투와 표현 방식이 지속적으로 상위권에 오릅니다(출처: 한국가족관계학회). 저 역시 남편과 다툰 뒤 되짚어보면 "네가 틀렸어"가 아니라 "그러니까 네가 문제지"라는 말투 하나가 불씨를 키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언어의 온도》에서 인상 깊었던 구절은 "말과 글은 사람의 품격이다"라는 문장입니다. 저는 이 문장을 읽고 솔직히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습니다. 그동안 "내 말투가 원래 그래"라는 말을 습관처럼 들어왔고, 실은 저 스스로도 무심코 사용했던 표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말이 얼마나 무책임하게 들리는지,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제대로 인식했습니다. 원래라는 건 없습니다. 나쁜 습관은 고치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합니다.
경청은 기술이 아니라 태도다, 제 경험으로 말씀드립니다
이 책이 단순한 어휘력 향상 가이드가 아닌 이유는 경청(Active Listening)을 말하기보다 앞에 두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경청이란 상대의 말을 단순히 듣는 것을 넘어, 감정과 의도까지 파악하며 집중해서 듣는 적극적인 행위를 말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적극적 경청(Active Listening)이라고도 부릅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경청이 어려운 이유는 기술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감정이 격해졌을 때 자동으로 방어 모드가 켜지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무언가 지적을 시작하면 저도 모르게 다음 반박을 머릿속에서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저는 말을 듣고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소리를 듣고 있었던 겁니다. 그 차이가 관계에서 어마어마한 결과를 만들어 냈습니다.
경청의 중요성은 실증적으로도 뒷받침됩니다. 한국심리학회의 연구에 따르면 갈등 상황에서 상대방이 충분히 경청받았다고 느낄 경우 갈등 해결 가능성이 유의미하게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한국심리학회). 결국 먼저 들어야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고, 그때부터 벌어진 거리를 좁혀갈 수 있습니다.
이 책을 남편에게도 추천했습니다. 솔직히 처음에는 "이거 읽어봐"라는 제 말 자체가 "당신이 문제야"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싶어 망설였습니다. 그래서 먼저 제가 읽고 제가 먼저 바꿔보기로 했습니다. 욱하는 순간을 조금 참고, 날카로운 표현 대신 한 박자 늦춰서 말하는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상대가 먼저 해주기만 기다리는 건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는 걸, 그때 깨달았습니다.
일상에서 언어의 온도를 조금씩 높여가는 방법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상대방이 말을 마칠 때까지 끊지 않고 들어주는 경청 시간 갖기
- 날카롭고 단정적인 표현 대신 "
인 것 같아", "하면 어떨까"처럼 여백 있는 표현 사용하기 - 입안에만 맴돌던 감사의 말을 하루 한 번이라도 소리 내어 표현하기
- 감정이 격해졌을 때는 반박보다 "잠깐 생각해볼게"라는 한 문장으로 대화 잠시 멈추기
우리 아이는 지금 부모의 말투를 그대로 흡수하며 자라고 있습니다. 어떤 언어 습관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하길 원하는지, 그 답이 곧 제가 오늘 사용하는 말의 온도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는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닙니다. 언어의 온도만 조금 달라져도 일상이 눈에 띄게 따뜻해집니다. 거창한 변화가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늘 집에 들어서며 건네는 말 한마디, 그 온도를 한 칸만 올려보는 것부터 시작해 보시길 권합니다. 처음에는 분명 어색합니다. 그래도 계속하다 보면 굳어 있던 마음이 한결 풀리는 순간이 반드시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