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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을 버티는 것과 시련에서 다시 일어서는 것은 같은 말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저는 오랫동안 '잘 참는 것'이 강한 사람의 조건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제 안에 쌓인 감정들을 들여다보니, 참는다는 건 결국 묻어두는 것이었더군요. 회복탄력성은 참는 힘이 아니라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라는 말이, 그래서 더 오래 머물렀습니다.

자기 조절능력: 감정을 묻는 것과 다스리는 것의 차이
일반적으로 감정을 잘 다스리는 사람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감정을 억누를수록 엉뚱한 순간에 터지고, 정작 필요할 때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뇌과학에서는 이를 감정조절력(Emotion Regulation)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합니다. 여기서 감정조절력이란 스트레스 자극이 왔을 때 즉각적인 반응을 지연시키고, 상황을 보다 객관적으로 재해석하여 긍정적인 정서 상태로 복귀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해 화가 날 때 바로 폭발하는 게 아니라, 잠깐 멈추고 상황을 다시 읽어낼 수 있는 힘입니다.
이것과 함께 작동하는 것이 충동통제력입니다. 충동통제력이란 순간의 감정이나 욕구가 아니라 장기적인 목표를 기준으로 지금 이 상황을 버텨내는 능력을 뜻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충동통제력이 높은 사람은 낮은 사람보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코르티솔 분비량이 현저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코르티솔(Cortisol)이란 신체가 스트레스를 인식할 때 부신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지속적으로 높은 수치를 유지하면 면역력 저하와 정서 불안정을 유발합니다(출처: 미국 심리학회(APA)).
감정 조절이 단순히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호르몬 수준에서 측정 가능한 신체 반응이라는 것이요. 그 사실을 알고 나서야 감정을 다스리는 훈련이 단순한 자기 계발이 아니라 실제로 뇌의 구조를 바꾸는 과정이라는 걸 받아들이게 됐습니다.
저에게도 생각조차 하기 싫은 기억들이 있습니다. 신기한 건, 그런 기억일수록 흐릿해지지 않고 오히려 선명해진다는 겁니다. 그 경험을 해석하는 틀이 바뀌지 않으면, 아픔은 그 자리에서 계속 같은 모습으로 반복됩니다. 원인분석력, 즉 시련의 원인을 지나친 자책이나 타인 비난 없이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능력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가 아니라 "이 경험을 통해 내가 무엇을 알게 됐을까"로 질문을 바꾸는 순간, 과거는 짐이 아니라 자원이 됩니다.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데 자기조절능력이 핵심적으로 작동하는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 감정조절력: 부정적 감정이 유발될 때, 즉각 반응하지 않고 상황을 재해석하는 힘
- 충동통제력: 단기 자극보다 장기 목표를 기준으로 현재 상황을 버티는 힘
- 원인분석력: 시련의 원인을 자책이나 비난 없이 객관적으로 분석하는 힘
대인관계능력과 감사습관: 혼자서는 완성되지 않는 이유
회복탄력성을 내면의 훈련만으로 기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저도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가장 힘든 시기를 버티게 해 준 건 저 자신의 의지보다, 옆에 있던 단 한 사람의 존재였습니다.
대인관계능력에서 특히 주목할 개념이 공감능력(Empathy)입니다. 여기서 공감능력이란 단순히 상대의 말에 "그랬구나" 하고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감정 상태를 내 신경계 수준에서 함께 경험하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신경과학 분야에서는 이를 '거울 신경세포(Mirror Neuron)'의 작동과 연결하여 설명합니다. 거울 신경세포란 타인의 행동이나 감정을 관찰할 때, 자신이 직접 그 행동을 할 때와 유사하게 활성화되는 뇌세포로, 공감의 신경학적 기반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관계가 어려워지는 이유 중 하나는, 상대가 실제로 무엇을 말했는가보다 제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였는가를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걸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듣는 것과 '내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행위였습니다. 진짜로 듣는다는 건 내 판단을 잠시 내려놓는 일이더군요.
뇌 훈련의 측면에서 감사하기(Gratitude Practice)는 가장 실천하기 쉬우면서도 효과가 꾸준히 검증된 루틴입니다. 하루를 마치기 전 그날 있었던 좋은 일 3가지를 기록하는 습관인데, 저도 한 달 이상 꾸준히 해본 결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는 걸 느꼈습니다. 부족함을 먼저 찾던 시선이,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을 먼저 발견하는 방향으로 바뀌었습니다.
실제로 긍정심리학 분야의 연구에 따르면, 감사 일기를 꾸준히 작성한 집단은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주관적 행복감이 유의미하게 높았으며, 스트레스 지수와 수면의 질 모두 개선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출처: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긍정심리학 센터). 감사하는 마음이 뇌의 긍정적 신경망을 강화하고, BDNF(뇌유래신경영양인자)의 분비를 높인다는 점도 주목할 만합니다. BDNF란 뇌신경세포의 성장과 유지를 돕는 단백질로, 규칙적인 운동과 감사 훈련이 이 수치를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긍정은 현실을 무조건 좋게 바라보는 게 아닙니다. 제 생각으로는, 어려운 상황 안에서도 가능성의 여지를 찾아내려는 태도가 진짜 긍정입니다. 그 태도가 훈련을 통해 뇌에 새겨질 수 있다는 점이, 이 책에서 가장 오래 남은 부분이었습니다.
아픈 기억을 완전히 지울 수는 없습니다. 저도 그걸 오랫동안 시도해봤지만 잘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방향을 바꿔야 합니다. 그 경험을 어떤 이야기로 다시 써나갈 것인가, 그 해석의 주도권을 제가 쥐는 것이 회복탄력성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의 상처가 지금의 저를 옭아매는 족쇄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힘으로 전환될 때, 비로소 그 경험은 자원이 됩니다. 혼자 힘겹다고 느껴진다면, 지금 당장 완벽하게 회복하려 하기보다 딱 한 가지, 오늘 감사한 일 하나를 찾아보는 것에서 시작해 보시길 권합니다.
참고: 김주환, 회복탄력성, 위즈덤하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