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저는 한동안 다른 사람을 꽤 빠르게 판단하는 편이었습니다. 판단하는 생각을 멈추기 어려웠습니다. 어느 순간 제가 보는 것이 그 사람의 전부라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한수지 작가의 그림책 《어떤 책》은 바로 그 착각에 조용히 균열을 냈습니다. 덮인 책 속에 혼자 남겨진 한 아이의 이야기인데, 읽고 나서 한참 동안 책을 내려놓지 못했습니다. 잊혀진 존재: 덮인 책 속에서도 삶은 계속된다 《어떤 책》의 설정은 단순합니다. 누군가 읽다 덮어버린 책 속에 한 아이가 남겨져 있고, 독자가 다시 펼칠 때까지 그 아이는 혼자 밥을 먹고 꿈을 꾸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 단순한 설정이 읽는 내내 묘하게 마음에 걸렸습니다.여기서 핵심 개념이 하나 등장합니다. 바로 '서사적 방기(敍事的 放棄)'입니다. 여기..
솔직히 이 소설을 읽기 전까지 저도 프랑켄슈타인을 괴물의 이름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영화 포스터와 할로윈 코스튬이 그 이미지를 워낙 강하게 심어놓은 탓이겠지요. 실제 원작을 펼쳐들고 나서야 그 오해가 얼마나 표면적인 것이었는지 깨달았습니다. 1818년 메리 셸리가 18세의 나이에 완성한 이 작품은, 두 세기가 지난 지금도 과학기술의 윤리, 존재의 고독, 인간 욕망의 한계를 정확히 겨냥하고 있습니다.창조의 윤리: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만들어야 한다는 뜻인가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먼저 '창조주의 책임'이라는 개념에서 멈춰 섰습니다. 빅터 프랑켄슈타인은 갈바니즘(Galvanism)을 연구하며 생명 창조의 가능성에 집착합니다. 여기서 갈바니즘이란 전기 자극을 통해 근육을 움직이게 하는 현상으로, ..